골드러시 이후,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 - SWI PREMIUM

골드러시 이후,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엄청난 성장과 성장이 원래의 템포로 잦아드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고속성장은 한동안 오지 않거나, 다시 없을수도 있습니다. 일본 만화시장의 사례를 보면, 우리가 겪은 고속성장이 ‘노멀’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죠.

일본 만화시장은 1995년 최정점을 기록했던 5,864억엔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4,400억엔 중반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9년을 기점으로 성장해 2020년 코로나 특수를 맞으며 6천억엔대를 돌파, 2024년 최초로 7천억엔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성장세는 분명히 꺾이고 있고, 다시 맞은 황금기 역시 영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웹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모두 매출에 주목했습니다. 수백, 수천억이 매번 뉴스에 나오고, 수조원 매출액도 이야기되곤 했습니다. 마치 서부로 향했던 미국의 골드러시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하지만 이제 그런 성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1. ‘뉴 노멀’이 아니라, ‘백 투 노멀’
2020년대 초 투자 붐이 일면서 웹툰계에도 우후죽순 스튜디오들이 생겨났습니다. 스튜디오 체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마치 스튜디오 체제가 ‘뉴 노멀’이라거나, 매년 40% 이상 성장하던 시기를 ‘뉴 노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1) 코로나 시기 유동성 급증, 2) 코로나 시기 콘텐츠 수요 폭증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이 뉴 노멀이라고 했지만, 오프라인 비즈니스들이 팝업이나 스포츠, 공연이라는 형태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보면 콘텐츠 수요는 남아있지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코로나가 해제되며 원상복구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2020년대 초 폭발적 성장은 ‘뉴 노멀로의 진입’이 아니라 일시적 현상이고, 2025년의 우리는 지금 ‘백 투 노멀’, 이전의 모습으로 복귀되는 과정을 ‘불황’으로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 유동성이 폭발하며 일던 투자 붐 당시에도 업력이 긴 대표들은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투자자들은 작품을 보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웹툰의 성장률을 보고 들어왔고, 성장률 거품이 꺼지면 입장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요. 실제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문을 닫은 제작사들 소식은 새로운 뉴스가 되지 못하고, 플랫폼도 문을 닫는 경우들이 생기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성장률은 2024년 기준 두자릿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더 꺾일 겁니다. 어느정도 안정세를 찾고 소화 가능한 성장 범위가 올 때 까지 우리는 보통으로 회귀하는 상태를 ‘불황’이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2. 새로운 사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웹툰 관련 학과 재학생들입니다. 이들이 작가로 성장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채로 시장이 폭발적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이들을 어떻게 받아줄 것인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또 공모전만 바라보고 고립되어 경쟁적으로 시장을 바라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합니다.

포스타입이나 딜리헙과 같은 오픈플랫폼이 있지만, 일단 이들은 허들이 낮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대신, 발굴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그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그것을 맡기고 살아남으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한가지 상상을 해 보자면, 잘 큐레이션된 신인들의 등용문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공공에서 진흥을 위한 20-30화 정도의 중편 전문 플랫폼으로 신인들이 연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후원 시스템을 열어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원사업을 선정하듯이 선정된 사람들만 연재할 수 있도록 하고, 일종의 프로듀싱을 붙이는 방식으로 운영할수도 있습니다. 이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창의인재동반사업을 변형하거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만화규장각을 활용하는 사업 등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또는 민간에서 진행한다면 현실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데스밸리를 건널 수 있도록 하는 창업패키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대형 플랫폼’을 지향하도록 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실현 가능하고 구현 가능한 사이즈, 그리고 확실한 비즈니스모델 확보를 우선으로 하는 방식이 되어야겠죠.

지금 자라나는 신인 작가세대를 그냥 방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이들이 앞으로 자라나 작가가 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편으론 웹툰의 맥락을 잇고, 레거시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때 그때 유행에 따라 지원책이 바뀌고 혼란을 주는 지원체계는 ‘체계’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신인들을 키워내고 안정적으로 자리잡도록 하겠다는 ‘목적’이 있어야겠죠. 사업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것을 위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3. 이미 있는 사람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대체적으로 투자자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만화계에 오해하는 가장 큰 지점이 바로 ‘효율화가 가능하다’, ‘대량생산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웹툰의 ‘생산 혁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건데요. 예술 분야, 그 중에서도 서사를 다루는 매체들에서는 이런 효율화를 통한 생산 혁명이 아직까지는 불가능합니다. 물론,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매우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가능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숙련된 사람이 공정을 담당하지 않으면 퀄리티 보장이 어렵습니다.

또한, 편집자들의 노하우 역시 표준화 되기 어렵습니다. 편집자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은 표준화되기 어렵습니다. 가르친대로만 뽑아내는건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패턴화에 성공한 기업도 있지만 이 패턴을 갈고 닦고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것을 뽑아내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기계를 돌리듯 3교대로 일할수도 없고, 무작정 사람을 늘린다고 좋은 작품이 쏟아지지도 않습니다. 결국 있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인을 기다리고 키워내는 철학에 이어, 지금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을 쌓고, 더 좋은 파트너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도 중요합니다. 비단 편집자만이 아니라 이미 경력을 가진 작가들의 재교육 역시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경력이 있는 작가와 웹툰 편집자들의 역량 강화, 이들의 노동조건을 살피고 지속적으로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이건 업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지원보단 노하우를 공유하고 문제를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4. 플랫폼의 변화

또 한가지, 플랫폼의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할 겁니다. 양적 성장의 시대를 넘어 질적 성장의 시대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가장 우선되는 지점입니다. 여기서도 철학이 중요해지는데요. 폭발적 성장 가능성을 기도하듯 작품을 무한정 늘리는 것 보다, 편집부의 아이덴티티를 갖춘 작품을 ‘느낌’이 아니라 명확하게 갖추는 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아무거나 볼 수 있는 곳’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네이버웹툰 편집부’의 철학이 ⟪소년점프⟫의 ‘우정, 노력, 승리’처럼 읽히게 되는 것은 어려울까요?

네이버웹툰은 2022, 2023, 2024년 모두 330작품 전후의 신작(⟪2024 웹툰 드라마트랜스미디어 리포트⟫, SPANDAS)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개인창작자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창작자 작품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편집 체계를 만들 수도 있겠죠. 전면에 드러나는 구분된 큐레이션이 어렵다면, 특화 편집부를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건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말이지만, 취향이 다변화되고 있는 시대에는 유효한 접근이기도 합니다. 뭐,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카카오엔터의 경우에도 폭발적 성장이 끝났다면, 이제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를 봐야 하는 시점이 왔습니다. 그동안은 혼란과 조직개편을 거치면서 새로운 판을 그려야 하는 시기가 왔죠. 이미 ⟨나 혼자만 레벨업⟩을 통해 확인했다면, 조직개편을 통한 시너지를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기대해보게 됩니다.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요.

또 하나, 플랫폼들이 다른 곳들과 전략적으로 파트너십을 맺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카카오간 전략적 제휴는 색깔이 겹치기 때문에 곤란할 수 있죠. 그렇다면 다른 파트너들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소니가 지난 1월 카도카와의 최대 주주가 되고, 이번 주에는 반다이남코에 전략적 투자를 한 것처럼 말이죠.

지금까지는 인수와 합병이 대형 플랫폼들의 비즈니스였습니다. 이건 사업을 수평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자, 덩치를 키우기 위한 방안이었습니다. 그건 고속성장때의 일이고, 이제는 글로벌 콘텐츠 파트너들과 전략적으로 손잡고 사업을 확장할 방안을 마련해야겠죠. 그 과정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처럼 덩치 큰 플랫폼들이 뾰족하게 자기 무기가 생긴다면, 그 무기가 서로 다르다면 전략적 제휴를 두 플랫폼이 맺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애플과 구글은 경쟁관계지만, 서로 공생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다름아닌 철학입니다. 레거시를 만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우리의 철학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금을 찾기 위해 서부로 서부로 진격했던 미국의 서부시대는 프론티어 정신을 낳았습니다. 처음에 매출과 돈을 쫓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죠. 그리고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면, 우리가 남길 ‘정신’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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