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대 서점 CEO, "인공지능으로 만든 작품도 판매할 수 있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영국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스(Waterstones)에서 "인공지능이 작성한 도서를 판매할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확히 표기되고, 독자들이 이를 원할 경우에 한해서"라고 조건을 붙였습니다.

제임스 던트(James Daunt) 워터스톤스 CEO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면서도 "결국 선택은 독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던트 CEO는 "AI 생성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생성물은 우리가 판매해야 할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발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독자들이 원한다면' 판매할수도 있다고 밝힌 건데요.

만화 분야도 그렇지만 출판업계에선 AI 활용에 대한 논쟁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수차례 인공지능 번역물의 퀄리티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나오기도 했죠. 특히 작가들의 경우 자신들의 작품이 허락, 또는 적절한 보상 없이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던트 CEO는 "워터스톤스는 물류 등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 AI를 이미 활용하고 있지만, AI가 만든 콘텐츠는 매장에서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점은 기본적으로 출판사가 출간한 책을 판매하고, 태생적으로 AI가 쓴 책에는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기업들의 막대한 자본력이 투자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AI가 ⟨전쟁과 평화⟩같은 걸작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 책이 AI가 쓴 것이든 아니든 독자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판매할 것"이라면서 "단, 그것이 사람이 쓴 것처럼 속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던트 CEO의 입장은 지금까지 합의를 통해 만들어낸 기본 전제와 궤를 같이합니다. 인공지능으로 만들었음을 명백히 표시할 것, 그리고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것. 최근 인공지능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소위 '슬롭(Slob)'이라고 부르는 쓰레기 콘텐츠들의 범람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이용자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다는 건데요. 그 와중에 주목받는 인공지능 콘텐츠들은 명확한 테마와 목적을 가지고 이용자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콘텐츠들입니다. 결국, 콘텐츠 이용자들이 바라는 것이 '좋은 콘텐츠'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미 돈트 CEO는 2011년 취임 당시 출판사가 매대를 '구매'하는 관행을 폐지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2,700만파운드 손실을 받으면서 비판을 받았지만, 이후 수익성을 회복하고 영국의 독서 문화를 바꾸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각 매장의 관리자가 지역 독자들의 취향에 맞춰 진열과 추천을 직접 결정하고, 직원들이 작성한 추천 문구가 매장에 비치되는 방식을 택하면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하이스트리트(도심 상권)에서도 워터스톤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배경이 된 바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만드는 큐레이션, 그걸 제공하는 직원들의 효능감이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는 거죠.

출판업계가 전세계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음에도 연간 10개의 매장이 확장중이고, 2024년 기준 매출액 5억 2,800만 파운드(한화 약 1조 382억원), 영업이익만 3,300만파운드(한화 약 649억원)에 달하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다양한 책'이 주목받도록 만드는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는 이야기인데요. 결과적으로 다양성을 이야기하던 웹툰업계가 이제는 다양한 작품을 큐레이션 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던트 CEO의 말은 '좋은 콘텐츠'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유통하고, 독자들을 만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로 다가옵니다. 작가들의 입장에선 '좋은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더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고, 시장의 입장에선 다종다양해지는 작품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만나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할 때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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