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칼럼] 후지모토 타츠키의 역설: 냉전의 그릇에 담긴 광기

서론: 소년 점프의 야성이 돌아온 날
⟨체인소 맨⟩은 2020년대 만화계에 벌어진 이례적인 '사건'이다. B급 영화적인 거친 미학과 카운터 컬처의 감수성을 주류 소년 만화 한복판에 이식했다. 전 세계적 상업 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년 점프 지면이 오래 전에 상실한 야성을 되돌려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간 600만 부 신화를 자랑하던 전성기 시절의 점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라인업이었다. 소년들의 급격한 신체적 성장에서 오는 불안이나 주류 질서에 대한 전복적 가치관을 품은 작품들이 라인업 상당수를 채웠다. 사회질서가 증발한 세상에서 남성적 폭력이 찬미되고(⟨북두의 권⟩), 경찰관이 음주를 하며 무단으로 발포하고(⟨여기는 잘 나가는 파출소⟩), 호색한 킬러가 주인공(⟨시티헌터⟩)이 되던 시대. 90년대 이후, 일본 주류사회가 만화의 산업적 가치를 인정하고 포섭하면서 이 풍경은 사라졌다. ⟨체인소 맨⟩은 이 80년대적 분위기를 현대에 되살린 작품처럼 느껴진다. 재미있게도, 이 작품이 설정한 시대적 배경도 1980년대의 가상 세계다.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나중에 다시 짚겠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전작 ⟨파이어 펀치⟩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극단적 허무주의, 독자를 정서적으로 소진시키는 실험적 서사, 거대 담론 속에서 방황하는 주인공. 전통적 서사 구조를 거부하는 도발적 실험, 이른바 '안티 플롯'이었다. 그런 작가가 어떻게 ⟪주간 소년 점프⟫라는 주류 시장의 정중앙에서 대성공을 거뒀을까.
작가가 점프라는 메인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작가성이나 예술성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표면적인 관찰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이전 작품에서 보인 천재성과 광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을 '그릇'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냉전 시대의 국제 첩보 스릴러라는, 대중에게 익숙한 장르 문법이었다.
1부: 원재료의 확인 — '파이어 펀치'라는 실험
후지모토 타츠키의 전략적 진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원형이 확립된 '파이어 펀치'를 해부해야 한다.
정제되지 않은 광기
후지모토의 초기 작가성은 분명히 B급 영화적 감수성에 뿌리를 둔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같은 영화의 영향 아래, 세련된 표현보다 거칠고 강렬한 힘, 압도적 개성을 중시한다. 극단적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에로티시즘, 변태성욕에서 식인까지를 넘나드는 코드들이 여과 없이 분출된다. 나홍진 감독 작품을 비롯한 한국영화의 영향은, 그가 ⟨무한의 주인⟩을 그린 작가 사무라 히로아키와 나눈 대화에서도 확인된다. (사무라 히로아키도 후지모토 타츠키와 같은 미술대학 출신 작가다)

'안티 플롯'으로 똘똘 뭉친 후지모토의 데뷔작, ⟨파이어 펀치⟩
하지만 ⟨파이어 펀치⟩가 가지는 진짜 특징은 서사 구조의 부재, 혹은 의도적 해체에 있다.주인공 아그니는 명확한 목표(복수)를 가지고 출발하지만, 서사는 계속 비틀리고 예상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독자가 기대하는 카타르시스는 터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다. 복수의 대상은 변화하고, 여러 가지 판단이 모호해지며, 주인공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린다.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 대신, 독자는 형이상학적 허무함의 바다를 표류하게 된다. 전형적인 '안티 플롯'(전통적 서사인 '아크 플롯'을 의도적으로 뒤집는 이야기 구조)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유행했던 닛카츠(日活)사의 '로망 포르노'가 흔히 그렇듯 주인공이 일상에서 비일상을 경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플롯이 주류였다. 반면 한국 영화들은 이런 정해진 단계를 비틀고, 관객을 전혀 예상 못한 지점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서사 감각이 올히려 '한국 영화적 충격'에 가깝다는 점은 흥미롭다.
왜 대중에게 도달하지 못했는가
⟨파이어 펀치⟩는 예술적으로 대담한 실험이었지만,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명확한 서사적 보상 없이 끝없는 고통과 허무를 견뎌야 하는 독자는 정서적으로 소진된다. 마니아층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이 작품은 대다수 대중이 원하는 정서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후지모토는 이 실험을 통해 자신의 '원재료'를 확립했다. B급 영화의 감성, 극단적 폭력과 에로스, 죽음이라는 서사적 촉매, 그리고 기존 서사 구조에 대한 근본적 불신. 무엇보다 장기연재라는 큰 관문을 통과했다. 문제는 이 원재료가 날것 그대로는 넓은 독자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부: 냉전 서사라는 그릇의 발견
⟨체인소 맨⟩ 1부는 후지모토 타츠키의 가장 큰 도박이었다. (혹은 담당 편집은 린 시헤이의) ⟪주간 소년 점프⟫라는 주류 플랫폼에서, 자신의 B급 영화 감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적 성공을 동시에 거둬야 했다. 그가 선택한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핵심 구조: 총의 악마라는 핵무기
⟨체인소 맨⟩ 1부의 골격은, 사실상 냉전 시대 국제 첩보 스릴러다. 이것을 가장 명쾌하게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 작품의 핵심 설정을 치환해 보는 것이다.
총의 악마를 '핵병기'로 바꾸고, 체인소 맨을 '핵 발사 암호 코드'로 치환한다. 플롯은 아무 문제 없이 성립한다. 핵병기가 아니라 치명적 바이러스 병기로 바꿔도, 인류를 멸망시킬 인공지능을 제어할 키워드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이 치환 가능성 자체가 ⟨체인소 맨⟩ 1부 플롯의 냉전적 본질을 증명한다.

'총의 악마'의 모습. 세계를 종말의 공포로 몰아간 악마. 악마는 공포를 먹고 더 강해진다.
각국의 첩보원들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와 '그 무기를 제어할 유일한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인다. 미국, 구소련, 중국, 독일 등의 세력이 뒤엉키는 구도. 이것은 존 르 카레나 이언 플레밍이 반복적으로 변주해온, 냉전 첩보물의 가장 고전적인 뼈대다.
이 틀이 후지모토의 '정제되지 않은 광기'에 제공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명확한 긴장 구조, 적과 아군의 유동성, 세계를 무대로 한 스케일,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가 이미 체화하고 있는 장르 문법이라는 안전장치. 독자는 익숙한 장르의 문법을 따라 작품에 입문하지만, 그 안에서 후지모토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 극단적 폭력, 복합적 심리 묘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냉전 구도 안의 팜므 파탈: 마키마와 레제
후지모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팜므 파탈' 서사도, 이 냉전적 틀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마키마는 냉전 첩보물에 빈번히 등장하는 전형적 인물형이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관, 이중 첩보원적 존재. '지배의 악마'라는 그녀의 능력은 냉전 시대의 권력 구조 그 자체의 은유이기도 하다. 정보를 독점하고, 하위 요원을 체스 말처럼 움직이며, 그 모든 것이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작동한다.

"쟤가 먼저 꼬셨다니까요!"는 팜므파탈의 조건이다
레제는 더욱 직접적이다. 그녀는 소련 측 첩보원이다. 의도적으로 비 오는 날 주인공의 전화박스로 뛰어들어 덴지를 유인하는 레제의 행동은, 첩보물에서 표적에 접근하는 공작원의 그것과 정확히 겹친다. 그리고 레제의 비극은 냉전 서사의 고전적 비극 그 자체다. 개인의 감정과 조직의 명령 사이에서 찢기는 첩보원. 초심을 잃으면서 상위 팜므 파탈인 마키마에게 비극적 최후를 맞는 레제의 운명은, 냉전 구도가 개인을 소모품으로 만드는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팜므 파탈은 ⟨체인소 맨⟩의 별도 축이 아니다. 냉전 첩보 스릴러라는 장르에 원래 내장된 문법이며, 후지모토는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극대화한 것이다.
계산된 배신: 독자의 예측 능력을 무기로 삼다
이 냉전 첩보 스릴러의 틀 위에서, 후지모토는 또 하나의 전략을 구사한다. 히메노, 아키, 파워 같은 주요 캐릭터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이것은 ⟨파이어 펀치⟩식 무작위적 혼돈이 아니다. 후지모토는 먼저 독자에게 소년 만화의 관습을 따르는 척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구축하고, 주인공과의 유대를 형성하며, 독자에게 "이 캐릭터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심어준다. 그리고 정확히 그 지점에서 배신한다.

금속노조를 오열하게 만든 그 장면. 휴즈의 장례식.
이는 '안티 플롯'이 아니라 '메타 플롯'이다. 플롯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플롯 예측 능력 자체를 무기로 삼는 것이다. 물론, 잘 빌딩된 인물을 인상적인 방법으로 퇴장시키는 것은 소년 만화의 고전적 전략이기도 하다.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에서 에이스의 죽음,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휴즈의 죽음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체인소 맨⟩이 다른 점은, 이 배신의 빈도와 잔인함의 수위가 냉전 첩보물의 냉혹한 논리 안에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첩보전에서 사람은 소모품이다. 이 장르적 전제 덕분에, 후지모토의 무자비한 캐릭터 퇴장은 '작가의 변덕'이 아닌 '세계의 잔혹함'으로 독자에게 수용된다.
최하층으로부터의 성장: 덴지라는 닻
이 냉혹한 세계관 속에서 독자를 붙잡아두는 닻은 주인공 덴지의 성장 서사다. 덴지는 최하층의 삶에서 시작한다. 그의 욕망은 거창하지 않다. 평범한 식사, 연애, 잠자리.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인간적 욕구들이다. 물론 상당수 여성 독자들이 덴지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도 덴지가 이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마구 뿌려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후지모토는 광기 어린 다크 판타지 세계관과 냉전적 규모의 첩보전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을 가장 '낮은' 욕망에 고정시켰다. 덕분에 독자에게는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도 감정적으로 이입할 구석이 생긴다. 고전적인 시나리오 구조다. 주인공이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세계를 이해하며, 인간다운 감성을 획득해가는 과정.

나를 파괴하기 위해 온 나의 구원자
그런데 그 성장의 안내자처럼 보였던 마키마가 사실은 덴지를 파멸시키기 위해 설계된 덫이었다는 반전. 이 고전적인 팜므 파탈 서사는, 냉전 첩보물의 구조와 맞물리면서 어떤 '안티 플롯'보다도 강렬한 감정적 충격을 만들어낸다. 구원이라 믿은 것이 함정이었다는 배신. 이것은 안티 플롯의 허무함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플롯이 만들어내는 비극이다.
3부: 왜 하필 냉전인가 — 80년대 점프로의 회귀
여기서 서론의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체인소 맨'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후지모토 타츠키가 소년 점프에 되돌려주고 싶었던 것은 80년대 점프가 가졌던 전복적 에너지다. 주류 질서에 길들여지기 전, 거칠고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했던 그 시절의 만화. 그리고 그 전복적 에너지를 담기에 냉전이라는 시대적 틀만큼 적합한 그릇도 없다.
냉전 시대는 세계 질서 자체가 폭력적 긴장 위에 서 있던 시대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개인은 거대한 국가 전략의 소모품이 되며, 표면적 질서 아래에는 항상 혼돈이 잠복해 있다. 이 세계관은 후지모토가 ⟨파이어 펀치⟩에서 날것으로 그려냈던 허무주의적 세계 인식과 본질적으로 통한다. 차이가 있다면, 냉전이라는 역사적 틀이 그 허무주의에 구체적인 형태와 작동 논리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필자 주: 일본 만화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인 ⟨바쿠만⟩에도 등장하는 '왕도'라는 개념에 근본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거부감과는 별개로, ⟨체인소 맨⟩이 왕도적 문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내부에서 해체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4부: 편집자라는 번역자 — 린 시헤이의 역할
후지모토 타츠키의 이 전략적 진화가 저절로 일어났을 리는 없다. 그 중심에는 편집자 린 시헤이라는 결정적 존재가 있다. 후지모토와 린의 관계는 후지모토가 17세에 만화상에 투고한 시절부터 시작됐다. 데뷔 전, 후지모토는 새로운 콘티를 계속해서 보냈고, 린은 매일같이 회의를 거듭하며 이 원석을 다듬었다. 10대 후반의 무명 지망생 시절부터 ⟨파이어 펀치⟩의 실험을 거쳐 ⟨체인소 맨⟩의 폭발적 성공까지, 후지모토의 작가적 진화 전 과정을 곁에서 목격하고 조율한 유일한 인물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를 작가로 길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린 시헤이.(출처=BRUTUS)
일본 만화 편집자의 역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점프 편집부에서 담당 편집자는 단순한 교열자가 아니다. 작가와 함께 콘티를 검토하고, 서사의 방향을 협의하며, 때로는 작품의 근본적인 구조 변경을 제안하기도 하는 공동 창작자에 가깝다. 특히 주간 연재라는 살인적 스케줄 속에서, 편집자는 작가가 매주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겸한다.
린이 후지모토에게 한 것은, 정확히 이 역할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파이어 펀치⟩ 시절의 후지모토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작가였다. 그 날것의 에너지는 강렬하지만, 주간 소년 점프의 독자층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언어로 쓰여 있었다. 린의 역할은 그 언어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검열이 아니라 번역. 후지모토가 쓰는 '안티 플롯의 언어'를 점프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장르의 문법'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파이어 펀치⟩에서 방향 없이 분출되던 폭력과 허무와 광기를, ⟨체인소 맨⟩에서는 냉전 첩보 스릴러라는 단단한 골격 안에 부어 넣었다. 후지모토의 원재료는 그대로 살아 있다. 다만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경로가 바뀐 것이다. 린 시헤이는 후지모토의 광기에 번역 가능한 형식을 부여한 사람이다. 작가의 개성을 희석시킨 것이 아니라, 그 개성이 가장 먼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문법을 함께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린 시헤이가 담당한 또 하나의 메가히트작이 바로 ⟨스파이 패밀리(SPY×FAMILY)⟩라는 점이다. 작가인 엔도 타츠야와는 15년 이상을 함께한 사이다. 그리고 ⟨스파이 패밀리⟩는, 제목부터가 선언하듯이 노골적인 냉전 시대 첩보물이다. 동서 냉전을 모델로 한 가상의 분단국가, 서방 측 첩보원 아버지, 동방 측 암살자 어머니, 초능력자 딸. 이 작품은 냉전 첩보물의 문법을 가족 코미디라는 따뜻한 외피로 감싸 대중적 대성공을 거뒀다.
같은 편집자가, 같은 시기에, 같은 냉전 첩보물의 뼈대 위에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세웠다. ⟨스파이 패밀리⟩에서는 냉전의 긴장을 가족애와 유머로 해소하고, ⟨체인소 맨⟩에서는 그 냉전의 냉혹함을 후지모토의 광기를 담는 그릇으로 활용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린 시헤이가 냉전 첩보 서사의 구조적 유용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장르 문법을, 작가의 체질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 낸 것이다. ⟨체인소 맨⟩의 냉전적 골격은 후지모토 혼자서 도달한 결론이 아니라, 이 장르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편집자와의 협업이 만들어낸 전략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천재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천재성만으로 주간 소년 점프의 정중앙에 안착할 수는 없다. 린 시헤이가 없었다면, 후지모토는 '파이어 펀치'의 연장선에서 마니아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작가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린은 후지모토의 언어를 점프라는 무대의 언어로 번역한, 말하자면 통역사였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번역의 문법이 냉전 첩보 스릴러였다는 것은, ⟨스파이 패밀리⟩라는 또 하나의 성공이 증명하고 있다.
결론: 번역(飜譯) — 광기를 대중의 언어로 옮기다
후지모토 타츠키의 변화를 단순히 "안티 플롯에서 플롯으로"라고 정리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다. 번역이다. ⟨파이어 펀치⟩의 후지모토 타츠키는, 대중이 읽을 수 없는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극단적 허무, 서사 구조의 의도적 해체, 정서적 보상의 거부. 이것은 그 자체로 강렬한 문학적 언어이지만,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수가 극히 제한된다. 원문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면 도달 범위에 한계가 있다.
⟨체인소 맨⟩에서 후지모토가 한 것은, 자신의 언어를 버린 것이 아니다. 그것을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장르의 문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냉전 첩보 스릴러라는 문법은 이 번역에 있어 결정적인 도착어(到着語)였다. 독자가 따라갈 수 있는 긴장의 뼈대, 적과 아군의 유동적 관계, 팜므 파탈의 심리적 깊이, 캐릭터의 죽음을 정당화하는 냉혹한 세계의 논리. 이 모든 장르적 문법이, 후지모토의 B급 영화 감성과 극단적 폭력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그 충격을 희석시키지 않으면서— 광범위한 독자에게 전달한다.
좋은 번역이 그러하듯, 이 과정에서 원문의 본질은 손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파이어 펀치⟩에서 방향 없이 분출되던 허무주의는, 냉전이라는 틀 안에서 "개인은 거대한 체제의 소모품이다"라는 구체적 형태를 얻었다. 안티 플롯의 무작위적 혼돈은, 첩보전의 냉혹한 논리 안에서 "계산된 배신"이라는 더 날카로운 칼날로 변했다. 원문보다 번역문이 더 강렬해지는, 번역의 가장 이상적인 경우다.
이것이 ⟨체인소 맨⟩의 진정한 혁명이다. B급 영화 감성을 주류 시장에 가져온 것이 아니다. 대중이 해독할 수 없었던 작가의 언어를, 그 언어의 날을 무디게 하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옮긴 것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안티 플롯의 작가에서 메타 플롯의 대가로 진화했다. 그는 광기를 잃지 않으면서 광기를 제어한다. 실험 정신을 유지하면서, 그 실험을 대중과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그 번역의 도착어가 냉전 첩보 스릴러였다는 것. 이것이 후지모토 타츠키의 역설이자, ⟨체인소 맨⟩이 이룩한 번역의 정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