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이야기 형식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영화 "전독시"의 장르는 무엇인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포스터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은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웹소설 본편의 연재 시작이 2018년이고, 웹툰은 2020년에 네이버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웹소설의 경우 전세계에서 누적 조회수 3억뷰라는 메가 히트를 기록했고, 웹툰 역시 연재되는 요일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어느정도 검증된 원작을 가지고 제작한 영화는 보고 난 뒤에 좋은 평가를 해주기 어렵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우선 원작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면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인 웹소설 ⟨전독시⟩는 표지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현대 판타지’ 장르이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게임판타지, 성좌물, 책빙의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이미 현대 한국에서의 웹소설이 가지고 있는 장르성이라는 것이 영화의 장르와 다르다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장르는 일반적으로 문화예술 작품의 형식적 갈래는 뜻하던 것이었지만, 영화에서의 기법적 발전을 통해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형식, 등장인물, 세트, 사운드, 주제, 화면 구성, 편집, 분위기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면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이 ‘장르’라는 속성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장르와 웹소설 웹툰을 비롯한 현대의 서브컬쳐 영역에서의 장르는 굉장히 다른 형태와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이를 파악하고 웹소설‧웹툰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장르의 요소들을 어떻게 영화라는 매체에 맞게 구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그러한 지점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웹소설에서의 장르를 단순히 이야기의 서사 혹은 스토리, 캐릭터와 설정이라면 파편화된 정보들만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표지에 밝히고 있는 ‘현대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영화는 현대 판타지 장르에서 필요한 설정된 세계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의 영역들을 그저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장르 판타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판타지로 재구성된 가지고 있는 법칙들에 대해서 충실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는 사실 장르 판타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상성을 다루는 모든 이야기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전독시⟩는 이러한 부분에서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책빙의'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 그러니까 스토리가 정해져 있고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구현이 전무하다.
심지어 게임판타지라는 장르성 내에서 등장인물들이 코인을 사용해 포인트를 구매하고 그것이 스탯과 스킬의 구입에 사용되었을 때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하며, 그것을 통해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머물러 있다. 김독자는 일찌감치 코인을 활용하지만 그것이 스탯을 구입하는지, 스킬을 구입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액션씬 이후에는 그것들이 소멸하거나 없어지는지 인물들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영역들은 소위 장르의 개념들을 고려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고려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특히 환상성을 가진 세계를 만들었을 때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서의 논리가 명확해야 하는데, 영화에서는 그것들이 현저히 부족하다. 그러기 때문에 책빙의물에 게임판타지라는 원작의 설정들은 소거하지 않았지만 그 세계에서의 공감의 논리를 해당 장르성이 아니라 캐릭터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문제들로 섣부르게 치환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의 문제들로 환상의 세계를 설득하려 했다면 츠베탕 토도로프의 ‘환상적-기이’ 정도의 맥락에 머무르는 이야기를 다루었거나, 혹은 로즈메리 잭슨이 이야기 했던 ‘점근축’의 유령지대를 만들어 환상과 현실이 서로 연관되는 지점들을 만들었어야 했지만 그러한 모습 역시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영화에서는 ⟨전독시⟩라는 원작의 이야기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장르성들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굳이 책의 내용이 이 세상에 빙의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게임판타지와 같은 개념들 역시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독시⟩와 같은 웹소설에서 장르성을 소거해 버리고 나면 남아있는 것들은 굉장히 피상적이고 평평한 메시지들이 된다.
그 안에 들어 있던 다양한 사회비판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들 역시 이러한 장르성 위에 구축되어 수용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장르성으로 구축된 구조를 해체해 버리고 난 뒤에 동일한 메시지들이 수용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가는 불확실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메시지의 전달 역시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한 예시 중 하나가 모호하고 피상적으로 등장하는 성좌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스타스트림이라는 방송이다. 원작에서도 미디어적 관음과 도착적인 면모의 비판적 요소를 드러내는 장르성이 있었지만 그것은 후반부에 이야기가 쌓이면서 도출된 것이다.
스타스트림이라는 방송 시스템이 존재하는 성좌물이라는 장르적 본류인 초월적인 힘을 사용하는데 세외적인 존재들의 능력이 관여한다는 기본적인 설정을 감안하고, 등장인물들이 그러한 세계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먼저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등장인물들은 성좌라는 존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의 속박과 불합리에 저항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갈 때 현실의 문제들을 불러와 수용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실제 그 시스템의 절대성과 불합리에 도전하는데 주인공인 김독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고 말이다.
결국 영화 ⟨전독시⟩는 원작 웹소설과 그것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하고, 성공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웹툰이라는 콘텐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르 판타지적 세계의 논리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캐릭터들에 대한 구현의 정도라든지, 이야기 메시지의 변화와 같은 것들은 사실 매체를 이동하면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외전 제외 웹소설 기준 551화의 이야기를 장편 영화라는 형식으로 옮기는데 이야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제한된 형식으로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하면, 일부러 인물들의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지방대학 출신, 같은 배경을 가진 소극적인 여자 캐릭터, 학폭 문제, 정치인이 보여주는 이기심 등이 아니라 설정해 놓은 세계의 법칙들을 충실하게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데 집중했어야 한다.

특히 장르 판타지 기반의 이야기를 각색하면서, 특히 그것을 통해서 수용자들의 공감을 얻어내고자 했으면서 장르를 구성하고 있는 코드와 관습들을 무시하고 현실의 이야기들을 섣불리 접붙인 것은 장르 판타지 기반의 서사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현대의 장르는 단순히 이야기의 구성 방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르는 현대에 이르러서 본질적으로도 역사적이지만 가변적이고, 본질이나 하나의 통일된 특성과 기원을 가지지 않는 형식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의 웹소설‧웹툰에서의 장르들은 수용자들이 관여해서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파생시키는 일종의 문화 형태다.
이는 이 시대의 장르가 이야기의 형식이라는 고정된 관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이 소비하고 있는 형태, 혹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와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는 것은 장르를 구현한다는 것이 단순히 이야기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는게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고 경험하여, 혹은 그러한 이야기의 형태들을 연습한 거대한 문화현상을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 ⟨전독시⟩에서 제기된 원작의 구현과 같은 팬덤의 목소리 역시 단순히 특정한 수용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가치를 정의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서브컬처 텍스트들이 소비되기 전까지는 계열체(paradigm)에 머무르고 있지만 수용자의 참여를 통해 통합체(syntagm)로서의 완결성을 획득한다는 아즈마 히로키의 이론에 빗대어 보면 이 시대의 웹소설‧웹툰을 통해 구현되는 장르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 ⟨전독시⟩는 과연 어떠한 장르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가 질문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책의 내용을 거부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책빙의물에서 어떠한 장점을 획득할 수 있는가, 게임판타지의 요소들이 거칠게 구현된 것으로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가? 현대의 장르판타지적인 요소들을 납작하게 하여 각색된 세계에서 현실의 사회적인 문제들이 수용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가?
그저 환상이라는 현실에 대한 상징구조를 이용해 현실의 문제들을 전복적이고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목적에 머무를 것이었다면 장르 판타지, 그것도 한국 웹소설에서 책빙의물과 성좌물이라는 장르의 일정한 패턴을 만들었던 작품을 원작으로 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